영국 코미디 Derek, 데릭
Derek은 Ricky Gervais의 TV 시트콤 중 가장 최신작이다. -얼마 전 개봉했던 영화 <David Brent: On the Road>를 제외하고- 내가 Ricky Gervais의 HUGE FAN임을 알고 있는 영국인 친구가 내가 이 드라마는 별로 재미있지 않아할 것이라고 미리 귀뜸을 해준 적이 있는데 그 친구는 이 드라마가 내가 좋아하는 다른 드라마들처럼 쉴 새 없이 터지는 코미디 요소가 없어서 나에게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.
하지만 이번 드라마를 본 후 Ricky Gervais는 역시 믿고 봐도 되는구나'하고 생각했을 만큼 노련함이 돋보이는 웰메이드 드라마였다. 내가 Ricky Gervais의 드라마에 대해 포스팅을 할 때마다 계속해서 강조하는데 그의 유머감각은 호불호가 꽤 갈린다는 것이다. 정말 웃겨서 미치는 사람이 있고 처음부터 끝까지 어디에서 웃어야할지 모르겠다며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반이다. 내가 구구절절 적어놓은 이 드라마에 대한 칭찬들을 읽은 후 볼지 안볼지는 본인의 선택이고 웃길지 안웃길지 역시 본인의 취향이다.
Derek은 열댓명의 노인들이 머물고 있는 작은 요양원에서 일을 하고 있는(정확히 하는 일은 정해져 있지 않고 노인들의 말동무도 되어주고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한다) 약 50세의 남자인데 에피소드 1에서 언급되듯이 자폐 증상을 보인다.
그래서 표정도 항상 사진 속 저 표정이고 말도 어눌하게 하며 순수한 어린아이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 곳에서 일하는 것을 굉장히 좋아하고 함께 지내는 할머니, 할아버지들을 진심으로 생각하고 아낀다! 이 곳의 원장인 Hannah를 엄마 따르듯이 따르며 항상 Hannah가 제일 좋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.
난 남자들은 이 드라마를 별로 안 좋아할거라 짐작했는데 영국에서 오래 살다온 남자 두 명에서 추천해줘 본 결과 둘 다 아주 재미있게 봤다고 한다. 가끔씩 눈물샘을 자극하는 씬들이 있는데 심지어 울기도 했다고 한다.
Derek이 좋아하는 Hannah. 이 역할에 딱 맞는 친근한 외모를 가지고 있다. 연기도 잘한다. Derek이 Hannah를 이성적으로 좋아하는 건지 아니면 엄마의 부재로 엄마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Derek이 모성애를 그리워하는 모습으로 좋아하는 건지는 정확히 나오지 않지만 아마 그 중간의 감정인 것 같다. 어린 아이의 지능을 가진 Derek에게는 사랑의 감정이 모호하고 순수한 것이라 드러나지 않은 것 같다.
Hannah 역시 요양원에 있는 노인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아끼고 자신의 직업에 굉장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. 참 힘든 역할을 맡고 있기에 조금 안쓰러워 보이기도 했는데 극 중반부쯤 진짜 사랑을 만나 Hannah를 행복하게 해줘서 기쁘다.
Derek의 가장 친한친구라고 소개되는(본인은 그렇게 불리우는것을 매우 싫어한다) Dougie는 이곳의 핸디맨이자 잡다한 온갖 일을 처리하는 역할을 한다. 재미있는 사실은 이 역할을 맡은 Karl Pilkington이 원래는 Ricky Gervais와 Stephen Merchant가 하는 라디오의 프로듀서였는데 이 드라마를 통해서 처음으로 연기에 도전했다는 것이다. 나도 이번에 알게 된 사실인데 처음하는 연기치고는 너무 잘해서 전문 연기자인줄 알 정도이다. 모든 것을 귀찮아하는 Dougie의 성격이 얼굴 표정과 모든 행동에서 그대로 드러난다. 전혀 꾸밈이나 숨김이 없다.
Ricky Gervais의 다른 작품들인 <Learn English with David Brent>, <The Idiot Abroad> 등에서도 전혀 정제되지 않은 raw한 입담을 마구 발휘한다. 극 중 캐릭어가 실제 성격과 일치하는 부분이 상당하다. 영국 코미디계에 있을까 말까 한 유일무이한 캐릭터이다.
내가 제일 좋아하는 캐릭터였는데 시즌 2에서부터는 나오지 않는다. -에피소드 1에서 그만둠- 너무 아쉬워서 그 이유를 찾아본즉 도저히 너무 떨려서 연기를 할 수 없어서 중도하차 했다고 한다.
시즌 2부터 Dougie가 하던 일을 인계받는 Geoff이다. 이 사람은 드라마 <Life's Too Short>에서 주술사같은 역할로 나오는데 그때 보고 정말 너무 웃겨서 그 한 에피소드에만 나오기 아깝다고 생각한 사람인데 여기에서 또 등장한다! 배역이 그리 크진 않고 초반에는 아주 비호감으로 나오지만 시즌 2 거의 마지막 부분에서 존재감을 조금 드러낸다.
그리고 위에 나왔던 Derek, Dougie와 함께 삼총사로 나오는 Kev가 있다. 사진에서만 봐도 냄새날것같이 생긴 이 사람 역시 성격이 평범하지는 않다. 직업도 없고 하는 일도 없으면서 benefit(영국정부에서 받는 후원금)을 타서 생활한다. 약간 성도착증 환자처럼 나오는데 하는 얘기가 온통 그런것과 관련된 얘기뿐이다... 시즌 후반으로 갈수록 왜 이런 성격을 갖게 되고 왜 이런 삶에 안착하게 되었는지 조금씩 밝혀진다.
처음에는 너무 더러워보이고 변태같아서 싫었는데 보면 볼수록 정이 가는 캐릭터이다. 나중에는 그냥 기름진 머리와 찌든 옷을 입고 의자에 앉아있는 것만 봐도 웃기다.
이 외에도 요양원에서 생활하는 할머니, 할아버지들, 처음엔 커뮤니티 서비스를 하러 왔다가 정들어서 계속 일하게 되는 Vicky, Hannah의 남자친구 Tom등 조연들의 연기도 아주 볼만하다.
이 드라마는 요양원에 거주하는 노인들이나 지적 장애인들이 가지고 있는 특성, 그들의 삶에 대해 여과없이, 또는 약간의 과장과 코미디를 섞어 표현하면서도 우리가 가지고 있는 편견을 깰 수 있을만큼의 순수한 면모도 드러낸다. 시계바늘만큼 느리고 고요한 삶을 사는 노인들에게 Derek은 신선한 활력소같은 존재이다. 그러기에 더욱 더 Ricky Gervais의 현실적인, 유머러스한 그러면서도 교훈적인 연출에 끌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.
한가지 아쉬운 점은 시즌 2가 시즌 1에 비해 조금 과하다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. 감동과 성적인 농담에 과한 욕심을 내어 그 부분에만 초점이 맞춰졌다는 생각이 든다. 그래도 Ricky Gervais만의 잔잔하면서도 여운이 있는 새로운 느낌의 드라마이다. Ricky Gervais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보기를 추천한다.
개인적인 평점 ★★★★☆